칼뱅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1. 주변 상황
첫째 아들은 태어나 2주 뒤에 죽었고, 3년 후 딸은 태어나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칼뱅의 아내는 칼뱅보다 15년 일찍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 슬픔은 참으로 큽니다. 제 생애의 가장 좋은 동반자를 잃었습니다.. 슬픔에 눌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친구들도 저의 정신적인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합니다. 주 예수께서 이 무거운 고통 속에서 저를 붙들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고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주님께서 하늘에서 손을 뻗어 돕지 않으시면 저는 고통에 눌려 쓰러질 것입니다." -칼뱅-
2. 육체적 상황
그는 나이가 들며 천식이 심해서 늑막염을 앓았고, 작가에게 최악인 치질을 앓아 자유롭게 앉기가 힘들었습니다. 또 그는 신장염과 담석증을 앓았는데 극심한 고통을 겪는 나날이 많았고, 두통은 한 번도 그를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날이 많았던 이유는 그가 복통과 소화 불량을 항상 겪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말년에 관절염으로 팔, 다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3. 사역적인 상황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역할 당시, 시민들이 의도적으로 개를 풀어 길 가던 칼뱅을 공격해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칼뱅이 제네바에서 추방되기 직전에는 그의 집을 향해 수 십 발의 총알이 사격되었고,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두고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칼뱅은 스위스 제네바 성도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그가 죽기 4년 전까지 그에게 제네바 시민권도 주지 않았습니다. 평생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살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일마다 교회에서 두세 차례 설교했고, 월, 수, 금요일에는 격주로 설교했으며, 매주 화, 목, 토요일에는 공개 강연을 했습니다. 또한 매주 목요일에는 목사와 장로들의 모임에서 성경을 가르쳤고, 정기적으로 병자와 죄수들과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럽 전역에서 오는 편지에 답장을 했는데, 그 수량이 엄청나서 그의 집 앞에는 편지를 받고 가져가려는 사람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113권의 논문과 34권의 주석, 32편의 설교집을 포함한 189권의 책을 저술했고, 장로교의 기초가 되는 교회법을 만들었습니다.
* 그의 죽음
그는 평범하게 장례를 치르고 싶어 했고, 자신의 무덤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의 요청대로 그는 비석 하나 없는 초라한 무덤에 외롭게 묻혔습니다. 그의 삶과 신앙, 그의 책들은 현재까지 남아 지금 우리에게 빛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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